소뇌동정맥기형으로 인한 뇌출혈 사망 사건
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맹장 수술 후 입원 중에서 잠에서 제대로 깨어나지도 못한 채 밤새 사망을 하고 말았다. 당직 의사는 병원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응급상황이 발생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이를 진료하러 왔다. 그런데, 의사가 경과관찰을 하지 않은 과실과 아이의 사망사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10세 환아는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구토를 하여 병원에 내원하였다. 병원에서 의료진이 진찰한 결과 우측하복부 압통 및 반사통이 있고, 복부초음파 검사상 복막염과 충수돌기염으로 진단하여, 오후 1시경 전신마취하에 충수돌기절제술을 시행하였다. 문제는 병원에 회복실이 없어서 부득이 수술실에서 일반병실로 바로 전실을 하였다. 집도의는 수술이 끝나고 간호사에게 활력징후를 정기적으로 관찰하라고 지시하고 아이 상태를 확인하지 않고 퇴근을 하였다. 아이의 활력징후는 정상이었고, 부모를 식별하는 지남력도 있었지만 잠을 자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이 부르면 눈을 뜨나 말을 하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만 하였다. 간호사는 마취가 약간 덜 깬 상태로 보고 당직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외부에서 가슴에 충격을 주거나 꼬집는 등 자극을 주면 눈을 뜨기 하였지만 초점을 한곳에 고정하지 못하는 멍한 상태에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신음을 하면 아프다는 모양새를 보여 가족들이 많이 걱정을 하였다. 간호사는 진통제를 주사하였고, 환아가 자꾸 잠을 자려고 하는 것은 마취에서 늦게 깨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저녁 8시경 환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으면서 외부에서 신체자극을 주면 눈을 뜨지만 의식은 몽롱한 상태였다. 저녁 9시경 환아가 아버지를 몰라보자, 아버지는 아이의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간호사에게 의사를 호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간호사는 당직의사를 호출하였지만, 당직 의사는 개인적인 일로 병원 밖에 있어서 환아를 진찰하러 오지 않고, 다른 인턴에게 부탁을 하였다. 인턴이 저녁 9시 40분경 환아를 진찰하였고, 환아의 활력징후 및 동공반사, 청진 호흡음 모두 정상이었다. 가족들에게 기왕력을 물어보자, 가족들은 없다고 대답하였다. 인턴은 당직 간호사에게 계속해서 경과관찰을 지시하였다.
환아는 밤 10시경 활력징후는 정상이었지만, 의식상태는 비정상이었다.(꼬집거나 건드리는 등 외부자극에 눈을 뜨나 말을 하지 못하고 초점이 분명치 않은 상태) 그런데 환아는 다음날 새벽 1시경 호흡수가 분당 28회로 가빠지기 시작하면서 가래와 약한 호흡곤란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당직 간호사는 의사를 호출하였고, 의사는 직접 병실을 방문하지 않고 유선상으로 거담제인 비졸본 투여를 지시하였다. 간호사는 새벽 1시 24분경 당직 의사를 2차로 호출하였고, 의사는 환아에 대한 진찰, 흉부청진 및 시진을 하였지만 특이한 청진음이 없자 경과관찰을 지시하였다.
환아는 새벽 2시경 외부 자극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는 이제 의사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환아는 새벽 3시경 혈압이 80/60으로 떨어지면서 청색증을 보이면서 호흡이 정지되는 어레스트가 발생하였다. 의료진은 환아를 중환자실로 옮겨 기도삽관 및 앰부 마스크로 산소공급 등을 하였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오전 6시경 사망을 하고 말았다.
부모는 도저히 아이의 장례를 치룰 수가 없었다. 밤새도록 환아를 보러 오지 않은 당직 의사가 너무 괘씸하였다. 그리하여 부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요청함과 동시에 당직 의사에 대하여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형사고소를 하였다.
부검결과, 환아의 사망원인은 소뇌 동정맥기형에 의한 원발성 소뇌출혈 소견이 확인되었고, 저산소성 뇌손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사 1심 재판과정에서 당직 의사는 자신이 호출을 받고도 병원 에서 개인적인 일을 본다는 이유로 환아를 보러가지 않은 것을 인정하였다. 1심 판사는 당직 의사의 직무태만에 대하여 책임을 인정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였다. 당직의사는 항소를 제기하였다.
1심 유죄판결이 선고된 상태에서 민사소송이 진행되었고, 1심 재판부는 통상적으로 맹장 수술 후 사망을 하지 않는 점, 의사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된 점 등을 참작하여 병원측이 유족측에게 위자료 8천만원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병원측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강제조정결정에 이의를 신청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재판부가 변동되는 등 변론갱신을 한 다음 새로운 의사 출신의 배석판사가 주심을 맡았다. 그런데, 판결결과는 전혀 뜻밖이었다. 의사가 경과관찰을 하지 않은 과실은 인정되지만, 환아의 사망원인인 소뇌동정맥기형에 의한 뇌출혈하고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즉,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과실과 손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건 망아의 사망원인은 소뇌출혈때문이지, 당직 의사가 경과관찰을 하지 않아서 사망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였다.
부모는 맹장 수술 후 아이를 잃은 것도 억울한데, 1심에서 패소하니 더욱 마음이 미어졌다.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서울고등법원 의료전담부는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병원측이 위자료 3천만원 정도를 지급하라고 강제조정을 하였다. 그러나, 병원측은 1심에서 승소했다는 이유로 이의를 신청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의료진의 과실과 사망사이에 인과관계는 없지만,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를 하여 환자나 가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는 이유로 위자료 6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하였다. 물론 병원측이 조정에 불복하였다고 괘씸죄가 적용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병원측은 즉각 상고하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더욱 가관이었다. 의료진이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경우 위자료 배상책임을 부담하고, 그 요건에 대해 증명책임은 피해자가 진다고 판시를 하면서, 전신마취 후 마취회복 기간이 경과하도록 기면 또는 혼미의 의식상태에 놓인 환자에 대한 사후관리를 함에 있어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만큼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서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하였다고 평가될 정도로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관이 아닌 소법관의 판단이 분명하다. 전신마취후 회복기간에 환자 상태는 매우 중하고, 회복실이 아닌 일반병실에서, 환아가 계속해서 의식이 명료하지 못하고 기면 또는 혼미한 상태에서 무려 12시간 정도가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직 의사는 간호사로부터 호출을 받고고 개인적인 용무로 인해 환자를 진찰하러 오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불성실한 진료가 어디 있을까.
결국 대법원은 현저히 불성실한 진료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하는 기준에 대한 심리미진 및 수인한도론을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였고,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다시 보내졌다.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환자측에게 조정을 강권하였고, 500만원 정도의 재판비용을 보전해 주는 정도의 화해권고결정을 통해 사건을 종결하였다.
무려 6년이라는 시간동안 4심 재판을 했지만, 유족측은 환자도 잃고, 손해배상도 받지 못하고 재판에서 지는 상황에 처해졌다.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실제적 진실발견이 주된 목표가 아닌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가 목표이다. 이건에서 부검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해서 환아의 소뇌출혈이 확진되는 일이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무래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각성지연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검이 환자측에게 독이 된 사건이다. 당직 의사는 형사 항소심에서 무죄가 되었고, 검찰이 상고했지만 상고기각으로 최종 무죄가 되었다.
부검과 과실에 대한 법리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배를 실현시키지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 사례이다. 부검은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 분명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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