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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문변호사

임의비급여의 예외적 인정 의미

                              

임의비급여 예외적 인정의 의미

 

대법원은 2012. 6. 19. 전원합의체 판결로 기존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여 임의비급여를 예외적으로 인정하였다. 대한민국 보건복지부가 인정하지 않는 임의비급여를 대법원이 사법적으로 엄격한 요건(요양기관이 환자로부터 동의, 의학적 긴급성, 의학적 안전성 및 유효성 입증할 것)하에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요양기관이 임의비급여를 시행한 경우 보건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하여 진료비 환수처분 및 업무정지처분(또는 과징금부과처분)을 하였고, 요양기관이 이에 불복하는 경우 행정소송을 통하여 권리구제를 받았다. 지금까지 하급심 및 대법원이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요양기관은 거의 대부분 패소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의 경우 하급심에서부터 엄격한 요건하에 임의비급여를 인정해 왔고, 대법원 역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하여 예외적 요건하에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였다.

 

일본에서는 환자와 요양기관 사이에 가격계약을 인정하여, 요양기관이 요양급여기준에 관계 없이 환자와 계약을 통해서 가격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가격계약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사법부로 하여금 임의비급여를 인정하게 했는가, 사법부는 왜 이 시점에 전원합의체 판결로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였는가. 이것이 대한민국 건강보험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것이 맞는가. 임의비급여에 관한 제도적 인정으로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보건복지부는 이제 사법부가 이 제도를 인정하였으니, 정부 차원에서 임의비급여를 제도화하는 것은 아닌가. 의료선진화든 의료민영화든 이것이 향후 건강보험체계에 몰고 올 위험성을 생각하면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보건복지부가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틀에서 요양급여기준을 정하여 급여, 비급여로 구분하여 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이다. 요양기관과 환자사이에 자유계약에 의하여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을 정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막상 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해 보았지만,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가 비록 사회주의적 측면이 있지만, 적은 보험료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아주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틀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큰 둑에 임의비급여 라는 구멍을 내 주었다. 당장은 엄격 입증책임이라는 주먹으로 둑에 난 구멍을 막고 있지만, 긴급성, 유효성, 안정성, 환자로부터 동의에 관한 입증은 재판부의 시각이나 입증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뚫릴수 있는 것이다. 둑에 난 작은 구멍은 처음에는 작은 물줄기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을 압박하고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부분들이 같이 무너지면 어느 일정한 순간이 되면, 거대한 둑은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엄격 입증책임만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이라는 거대한 둑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대법원이 임의비급여를 인정하였다는 차원에서, 복지부는 엄격 입증책임이라는 방패막을 두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입증이 어려울 것이다는 차원에서 양쪽 다 대법원 판결을 유리하게 해석하고 있다. 당분간 요양기관에서는 더욱 열심히 환자들을 진료할 것이고, 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하여 의학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벗어나면 진료비 환수 및 업무정지처분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몇 번의 하급심 재판을 통해서 위 예외적 요건이 입증이 되어 복지부가 행정소송에서 계속하여 패소한다면, 복지부는 행정처분에 소극적이 될 것이고, 요양기관은 더욱 더 적극적으로 가격계약에 의한 임의비급여 진료를 할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이 통제하지 않는 범위의 임의비급여에 해당하는 진료가 늘어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강보험급여나 비급여 영역보다 임의비급여 영역이 더 확대되어 있을 것이다. 임의비급여 영역이 늘어날수록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결국 국민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납부하는 보험료만으로 진료비 보장이 되지 않아 민간보험에 실손형 진료비 보험을 가입해야 할 것이다. 현재 50% 정도 민간보험가입자가 있다면, 결과적으로 건강보험보다 민간보험시장이 확대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다.

 

최근 포괄수가제, 사후 피임약 일반의약품 전환 등 의료계와 정부가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이러한 갈등 배후에는 결국 환자의 건강권이나 진료 받을 권리가 우선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돈의 힘이 작용하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 개운치 않다.

 

나랏님들이나 의료계 종사하시는 분들이나 대법관님들 모두 불철주야 격무에 시달려 고생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후손들에게 어떤 법과 제도를 물려주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미국식 제도가 다 좋은 것은 아닌지 않은가. 건강보험이라는 사회보험을 도입하여 온지 몇십년이 되지 않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잘 정착시켜온 건강보험제도를 임의비급여나 포괄수가제 등의 문제로 체계 자체를 흔드는 그런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건강보험이라는 거대한 둑에 난 임의비급여라는 구멍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재판부의 입증책임이라는 추상적인 기준만 남아 있다. 입증책임이란 주요사실을 주장하는 자가 증거를 제출하여 재판부의 심증을 형성하지 못하면 입증하지 못하는 자가 패소하는 소송법의 대원칙이다. 대부분의 소송이 입증을 하지 못하여 패소하는 것이 현실인 점에 비추어, 복지부의 낙관론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입증책임을 어느 정도로 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맡은 판사의 성향과 입증의 정도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복지부는 입증책임이라는 것에 임의비급여의 운명을 맡기지 말고 임의비급여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도 신속히 입법을 통한 제도 보완를 해야 할 것이다. 임의비급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권이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감수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