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신 부재시대
이인재 변호사(법무법인 우성)
1. 현실과 법의 모순 정비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우리는 관련 법적 근거나 규정을 찾지 않고 먼저 아는 사람부터 찾아서 전화를 걸어서 부탁을 한다. 병실 예약이 안되거나 입원시기가 늦어져도 병원 청소부나 원무과 직원들을 통해 부탁을 한다. 구청이나 시청에서 허가나 인가를 받기 위해서도 아는 사람을 통해 공무원에게 부탁을 한다. 관련 법령이나 조례, 예규 등은 중요하지 않다. 절차대로, 규정대로 가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신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면 시간이 단축된다. 국민성이 빠른 것을 좋아하니 어쩔수 없는 것인가. 빨리 빨리가 단기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 인터넷의 보편화 등에 기여한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를 빨리 빨리의 망령에서 벗어나서,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그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평생을 살면서 홍역처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병원과 법원이다. 그래서 왠만한 집안에 보면, 의사나 법조인이 한명씩 다 있다. 어르신들은 살아보니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는 의사가 있으면 좋겠고, 법적인 문제가 한번은 생기는데 아는 법조인이 있으면 좋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아는 사람을 찾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의료인과 법조인을 직접 알지 못하는 경우 중간자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중간자는 소개를 하고 소개료를 받는다. 이는 엄격히 변호사법이나 의료법을 위반하는 범법행위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범법행위가 없이는 일반인들이 직접 의료인이나 법조인을 만나는 기회가 쉽지 않다. 언제까지 이러한 중간지대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을 것인가.
성매매방지법이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변호사법에 변호사 이외에는 사건을 알선, 소개하고 금전을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지만, 현실은 그러지를 못한다. 아는 사람을 찾는 문화는 결국 전관을 선호하는 현상을 불러오고,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 이는 비단 법조계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다른 모든 공직사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체육 곳곳에 이러한 현상이 숨어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이러한 음성적이고 위법적인 부분을 공론화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집창촌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성매매방지법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이런 경우 집창촌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문제제기하고, 공창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공론에 붙이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제도를 도입하여, 음성화된 부분을 양성화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세금이 부과되고 더 이상 음성적으로 행하는 것이 적발되는 경우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형사벌과 행정벌을 동원하면 되는 것이다.
브로커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법이나 의료법으로 금지만 할것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로비스트로 등록해서 활동하게 하고, 활동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변호사법이나 의료법을 위반하는 경우 다시는 그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악어와 악어새가 공존하는 것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모색해야 한다. 법으로 금지만 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사고시 피해자 입자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은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제도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전문가 정신(전문가 양심)을 살려내야 한다.
살아가면서 크든 작든 사고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교통사고, 산재사고, 의료사고, 선박충돌사고, 폭력사고 등을 경험하였을 때, 피해자 입장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은 인권에 관한 문제로 접근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세월호 사고에서 1차적인 사고원인을 야기한 선주를 비롯한 업주, 침몰하는 뱃속에 300명이나 되는 목숨을 구호하지도 않고 그대로 탈출하는 선장 및 항해사들이 잘못한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이들에게는 그 행위에 맞는 민, 형사책임을 물으면 된다. 문제는 사고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위치에 있는 전문가 및 관계자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증거를 은닉, 은폐하고 다른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을 밝히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세월호 사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현장으로 가보자. 피해자 및 피해자 부모는 학교측에 진상규명을 철저히 해서 학교폭력을 행사한 원인이 무엇인지 신중히 조사하여, 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가해자의 폭력성향때문인지 확인한 다음,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한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피해자 입장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지 않을까, 열리더라도 좀더 조용하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를 염려하면서 대충 형식적인 사과를 시키고 넘어가려고 하려는 경향이 있다.(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사람이다 보니 좋은 것이 좋다고 하면서 어물쩍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발생한 의료사고현장으로 가보자. 마찬가지로 의료인들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의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이 경우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실수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증거를 없애고, 진료기록부를 조작한다. 그리고 난 잘못한 것이 없고, 환자의 특이체질 때문에 발생한 사고이므로 불가항력이다.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우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현장으로 가보자. 해경은 진도VTS 교신내역을 삭제한다. 도대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보더라도, 왜 하필 많은 시간대의 교신내역이 있는데,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시간대 교신내역만 없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이는 마친 산부인과 분만과정에서 심박동수를 체크하는 NST기록지가 계속 있다가 태아에게 문제가 된 그 시점의 기록지만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피해가 발생한 사고에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진상규명을 하는 행위는 법 이전에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학교폭력이든, 산재사고든, 의료사고든 마찬가지이다.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이유로 사고원인의 단서가 되는 증거를 은닉하거나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하고, 다시는 관련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영구히 박탈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증거조작행위를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는 철저히 피해자 입장에서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절차는 간단하다. 피해자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고조사위원회에 들어가 있으면 된다. 피해자 입장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된다면, 사과 및 재발방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과 및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되고, 이후 민, 형사적 책임 등 소재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밝혀짐에 따라 과적, 증축에 관여했던 자들이 전부 책임을 지고 다시는 그러한 과적이나 증축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아가, 증거를 조작한 자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후 다시는 증거조작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입장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 가해자의 사과 및 재발방지약속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아가 민형사문제도 저절로 해결이 될 것입니다. 의료사고도 마찬가지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피해자가 그 결과를 만족한다면, 의료인의 사과나 재발방지대책도 마련되고,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 형사책임문제 등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전문가 양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전문가가 양심을 저버리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 어떤 영화 속 시나리오가 기억난다. 국회의원 자녀 중 한명이 집단강간살인에 가담했다. 피해자 부검을 맡은 국과수 부검의가 부탁을 받고 부검감정서의 한줄을 바꾸어치기 한다. 법정에서 판사는 부검의의 증언을 듣고 무죄를 선고한다. 당시 법정 방청석에서 피해자의 남동생이 재판과정을 지켜보고, 더 이상 공권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국과수 부검의와 그 자녀를 포함하여 가해자 전부를 자력으로 살인하여 복수하는 그런 영화이다.
이러한 전문가 정신이 사라지면 한국 사회는 길을 잃고 만다. 세월호도 전문가 정신이 사라져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선장이나 항해사 중 한명이라도 전문가 정신을 갖고 이런 상태에서 선박운항은 불가함을 강력하게 호소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인허가 과정에서 한명의 공무원이라도 제대로 된 체크를 하였다면 사고를 막을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현장에 출동한 해경 중 한명이라도 인명구조의 기본원칙을 지켰다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모순들 중 하나를 고쳐 나가자. 최근 영화 역린에 나온 대사이다. 이 대사가 의미하는 것이 바로 전문가 정신, 전문가 양심의 핵심이다. 한국사회는 지금 이 말이 필요하다.(중용 23장 풀이)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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