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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문변호사

종아리근육퇴축술

종아리 근육퇴축술

 

 

일요일 오후 기자와 통화내용이 점점 빨라진다. 대한민국 최초로 의료소송을 집단소송으로 진행하여 승소한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수백명의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인 종아리를 예쁘게 하기 위하여 종아리 근육을 퇴축시키는 수술을 받고 나서 보상 기전으로 근육이 과다하게 형성되거나 자기도 모르게 근육이 움직여지거나 까치발을 하지 않고서는 통증을 견딜 수가 없게 된 사건이다.

 

다음날 월요일 동아일보 조간신문 사회면에 성형수술 부작용공동소송 첫 승소라는 제목하에 보도가 되었다. 출근하기가 무섭게 각종 방송사(KBS, MBC, SBS, YTN)에서 연락이 왔다. 저녁 9시 뉴스에 보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난생 처음받아 보는 방송세례였고, 일간 신문의 기사와 기자의 전문적인 글의 위력이 무엇인지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돌이켜보면, 2002년 변호사로 첫 발을 내딛고 멋모르고 의료소송을 한다고 하던 시절, 최초로 조선일보 전수용 기자가 필자를 의료전문변호사로 소개를 한 이후 6년만에 성형수술 부작용에 관한 공동소송으로 세상에 의료전문변호사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이 지면을 빌어서 동아일보 김현지 기자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사건 개요를 살펴보자.

A의사는 대한민국에서 종아리근육퇴축술에 관한 책까지 저술한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그런데 성형외과 전문의는 아니고, 다른 분야에도 전문이 없는 그냥 일반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 종아리 근육퇴축술이 생소하던 시절에 우선적으로 강남에서 깃발을 꽂고(실상은 성형외과학회에서 종아리근육퇴축술에 관해 최초 안전성에 관해 검증을 하고 있었던 중) 이 수술을 시작한 것이다. 뭐든지 선점하는 자에게 사람이 몰리는 법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그 A의사로부터 근육퇴축술을 배우러 온 B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일반외과 전문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아리근육퇴축술에 꽂혀서 A의사와 동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종아리 근육퇴축술의 원리는 고주파를 이용한 탐침을 피부 아래로 넣어 종아리 근육인 비복근과 신경이 만나는 지점을 열로서 퇴화시켜 근육을 축소하는 것이다. 열을 이용하여 근육을 축소시킨다고 하여 퇴축술이라 불렀다. 문제는 수술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근육과 신경이 죽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형외과 전문의나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종아리 근육퇴축술의 효과 및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수술로서 해서는 안되는 수술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물론 정확하게 수술을 하는 경우 효과가 검증되었고,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열로 근육과 신경을 죽이다보니, 이 수술을 받고 나서 통증을 호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종아리가 함몰되거나, 양쪽 다리가 비대칭으로 되고, 까치발을 하지 않고서는 걸을수조차 없는 증상 등이 발생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퇴화된 근육 이외의 부위에 보상근육이 재발하여 마치 커다란 알통을 달고 있는 것처럼 되는 경우도 있었고, 가만히 있어도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근육이 파르르하게 떨리는 증상도 있었다.

20대에서 40대 초반까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 콤플렉스인 종아리를 예쁘게 하여 평생 소원인 치마를 한번 입어보겠다는 열망에서 시작하여 어렵게 받은 수술이 도리어 신체적 기형과 정신적 충격을 안겨 주게 되었던 것이다.

 

맨 처음 종아리 근육퇴축술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은 자신의 부작용을 인터넷 카페(안티성형 등)에 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본 다른 여성 피해자가 자신과 동일한 경험을 한 것을 보고 서로 연락을 하게 되었고, 삼삼오오로 인터넷카페를 개설하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동일한 수술을 받고 나서 동일 유사한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카페 가입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기야 단체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피해자 대표들이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여 상담을 하였다. 지금같으면, 소액다수 피해자들이기 때문에 가급적 소송을 하지 않도록 유도를 하였을 것인데, 당시만 해도 성령충만한 상태로 뭐든지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집단소송을 해 보자고 하였고, 피해자들 대표도 동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원고단 모집에 들어갔고, 실제 수술을 받고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객관적인 드러나는 자만 원고단에 가입할수 있도록 하였다. 카페에는 몇백명이 가입을 하였지만, 소송을 한 다는 말에 처음에는 약 90여명이 소송에 참여를 하겠다고 하였다.

 

다음은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모으기 위해 최소한 진단서와 진료기록부, 수술전후 사진을 준비해서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피해자가 서울경기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서류를 받아야 했다. 정작 90여명이 소송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객관적인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진단서를 발급해 오라고 하자, 서류를 구비해서 보내준 피해자들은 30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선발된 원고단은 27명으로 특정되었다. 필자는 집단소송 또는 공동소송이라서 원고 명단만 특정하고, 내용은 동일하니 쉽게 내용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변호사 선임비용을 1인당 30만원으로 하였고, 인지대와 송달료는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하고 성공보수는 10%로 특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소장을 내고 나서 신체감정을 진행하면서부터 완전 오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말이 단체소송이지, 실제는 27명 각자의 의료소송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였다. 피해자별로 조금씩 수술을 받은 동기가 다르고, 수술 이후 호소하는 부작용 내용이 달랐고, 수술전후 의사로부터 들은 설명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의료소송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알겠지만, 의료소송은 한건 한건이 매우 어렵고 품이 많이 든다. 그래서 결코 의료소송을 많이 할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27명의 피해자들을 개개별로 이러한 내용들을 다 정리해야 한다고 하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렇게 고민하던 시점에 피해자 중 한명(춘천에 거주하고 있음, 얼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 오름)이 자원해서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그분이 없었다면 아마도 집단소송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전국적으로 피해자들이 많다보니, 한번 만나서 미팅을 하기도 어려웠다. 사무실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고, 대부분 직장이 있다 보니 주말이 라야 미팅이 가능하였다. 문제는 각자 피해자들마다 종아리 피해 상태가 달랐다는 것이다. 20명이 넘는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종아리를 내 보이면서 변호사님이 한번 만져 달라고 하였다. 아무리 의료사고 피해자라고 하지만,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필자의 마음 역시 편치 않았다.

 

필자는 종아리를 굳이 만지지 않아도 피해를 잘 알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근육이 딱딱하게 되어 있어서 한번 만져 보아야 제대로 된 변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기 하지만, 필자 혼자서 20여명이 넘은 여성의 종아리를 일일이 만지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종아리 근육퇴축술은 아니지만, 필자는 40대 초반의 여성 4분이 엉덩이의 근육을 세워주는 보형물을 삽입한 뒤 통증을 호소하면서 사무실에서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자신의 엉덩이를 직접 만져 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차마 만질 수가 없었다. 그때도 피해자들의 마음은 똑같았다. 변호사님이 피해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아야 재판에서 제대로 된 변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그리하여 많은 젊은 여성들의 종아리를 만지면서 피해상태를 체크하고, 사진을 찍었다. 법원이 지정한 대학병원에 가서 신체감정을 받았다. 피해자들별로 동일한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어떤 피해자들은향후 치료비가 700만원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400만원 정도 치료비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재판부는 신체감정결과가 도착한 이후 조정기일을 지정하였다. 피해자들이 전부 참석한다는 가정하에 마땅히 조정을 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다. 그리하여 부득이 재판부는 서울중앙지방법원 20층 회의실을 조정장소로 지정하였다. 조정기일에 약 10명 정도 되는 피해자들이 참석하였다. 마찬가지로 젊은 여성들은 저마다 자신의 종아리를 부장판사에게 보여주고 하소연을 하고 싶어 했다. 그만큼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사측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자신들의 잘못이 없다는 이유로 조정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신체감정을 받지 않은 3명을 제외하고, 24명에 대하여 약 400만원에서 580만원까지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하였다. 두명의 의사중 일반외과 전문의는 피해자들 대부분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이 아니라고 하면서, 항소를 하였다. 항소심에서 항소이유를 제출한 다음 B의사는 항소를 취하하였다. 그리하여 사건은 최종 확정되었다.

 

문제는 24명에 대하여 전체 약 12천만원 정도 되는 배상금을 어떻게 지급받을 것인가였다. A의사는 이미 파산이 되었고, 자취를 감춘지 오래 되었다. B의사는 자신도 A의사한테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였다. 피해자들은 난감함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 끝에 몇백만원정도밖에 되지 않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피해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자중지란이었다. 이미 피해자들 중에 2명은 개별적으로 B의사를 찾아가서(피해자 2명은 B의사가 직접 수술을 한 경우임) 돈을 받았다.

결국 남은 피해자들은 내용증명을 보내서 빨리 판결원금과 이자를 변제하라고 독촉을 하였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서, B의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자신도 이건의 피해자라고 하면서, 남은 판결 원리금에서 50%5,8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은 돈에 대해서는 A의사에게 받으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어찌할수 없다고 하였다.

 

참으로 난감한 그 자체였다. 결국 피해자들 대표를 소집하였고, B의사에 뜻에 따라 절반만 지급받고 B의사는 놓아 주기로 하였다. B의사는 합의서를 작성하는 날, 커다란 가방을 들고 왔다. 그 가방속에는 만원짜리 다발이 58개 들어있었다. 문제는 그 금액이 5,800만원임을 확인해야 하는데, 도무지 하나하나 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B의사는 필자를 향해서 어찌 사무실에 현금을 세는 기계가 없냐고 도리어 반문하였다. 성형수술의 세계에서는 현금 거래가 원칙인지 모르지만, 법률사무소에는 원칙적으로 현금 세는 기계가 없는 것이라고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부득이 직원과 B의사를 함께 은행에 보내서, 은행의 도움으로 금액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B의사와 사건을 종결한 다음 A의사를 수소문하여 남은 돈을 돌려받고자 하였다. A의사와 함께 일하는 스폰스(일명 전주)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각서까지 작성해 주었다. 그리고 피해금액중 일부를 변제하였다. 그러나, 2천만원만 변제하고 나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나중에 이유를 보니, A의사가 더 이상 수술을 하지도 않고,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A의사와 전주와의 관계도 종결이 되었다.

 

최근 의료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제대로 된 피해금액을 받지 못하거나 받으려고 해도 이미 부도가 나서 집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가압류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124월이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이러한 경우를 대비하여 판결을 받고도 의사의 경제적 사유로 판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의사를 대신해서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불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혹시나 피해자들중 의사로부터 돈을 받지 못한 경우 대불제도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가끔 거리를 걷다보면, 사람들의 시선은 여러 곳을 향한다. 필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시선이 항상 가는 곳이 정해졌다. 여성의 종아리다. 종아리를 보면서, 근육퇴축술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마음속으로 구별하고 있다. 직업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