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소생 이야기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깨어난 기적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젊은 여성이 지방흡입술을 받고 마취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각성지연으로 약 한달동안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평생 불구의 장애상태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취의와 집도의 사이에 발생한 법정비화 스토리이다.
식물인간이란 심장이나 호흡이 정지된 상태에서 일정시간 뇌에 산소공급이 안되어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정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1-3개월 이상 식물인간 상태가 지속되면 지속적 식물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라고 하고, 이러한 경우 의식이 회복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의식이 회복되는 경우 한마디로 기적이라고 한다.
26세의 꽃다운 젊은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성형외과에서 복부비만을 없애기 위해서 지방흡입술을 받기로 하였다. 하루 전날에 언니가 동일한 수술을 받았다. 마취가 조금 늦게 깨어난 것 말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동생 역시 아무런 부담 없이 1300만원이나 되는 큰 돈을 지급하고, 수술받기 전날 성형외과의원에 입원하였다. 복부지방흡입술은 새벽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동안 진행이 되었다. 마취과 의사는 성형외과 의원에 상주하지 않고 시간당 비용을 받고 수술시간동안 마취를 해 주는 초빙의였다.
문제는 수술이 끝나고, 초빙된 마취의는 시간당 마취비용을 받고 환자에 대한 인수인계를 마친 다음, 다음 마취를 위해 성형외과 의원을 떠났는데,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난 시점에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이벤트가 발생하였다. 간호조무사는 원장에게 보고하였고, 원장은 현장을 떠난 마취과 의사에게 전화를 해 보라고 하였다. 처음 마취과 의사는 간호조무사에게 전화상으로 손가락 집게에 있는 기구를 다시 착용하게 하고, 심호흡을 시키라고 주문하였다. 다행히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정상이 되었다. 그런데 십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알람이 작동하였다. 원장은 다시 마취과 의사에게 연락하여 즉시 와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마취과 의사는 다른 환자의 마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방을 떠나서 사고 현장을 방문할 수가 없었다.
원장은 환자에게 기관삽관 등을 하여 적절한 환기를 시켜야 한다는 상식은 있었지만, 정작 대학병원때 수련을 종료한 이후 몇십년을 해 본적이 없는 기관삽관을 섣불리 시행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마취과 의사가 빨리 현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마취과 의사는 아무래도 원장이 각성이 지연된 환자에 대한 응급처치를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동료 마취의에게 연락하여, 사고 현장에 가서 환자 상태를 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동료 마취의가 연락을 받고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도착 당시 현장 상황은 원장이 기관삽관 기구 등을 환자 옆에 준비하여 놓고, 마취과 의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 마취의는 신속히 기관삽관을 하고 산소를 공급하였다. 그러나, 이미 환자는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윽고 마취과 의사가 다른 마취를 마치고 현장에 도착하였다. 동료 마취의는 인수인계를 하고 현장을 떠났다. 이후 환자는 대학병원으로 전원이 되었지만, 뇌 MRI 촬영결과, 광범위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환자는 기약을 하지 못하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환자가 식물인간이 된 원인을 놓고 마취의와 집도의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였다. 집도의는 지방흡입술을 받고 나서는 식물인간이 될 이유가 없으니, 마취과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취과 의사는 산소포화도가 떨어졌을 당시 집도의가 기관삽관 등 적절한 환기를 통해 응급조치만 제대로 하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러한 조치가 결여되어 식물인간이 되었으니, 집도의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흡입술을 받고 나서 마취의가 인수인계를 마친 다음 현장을 떠난 상태에서 환자에게 발생한 저산소성 뇌손상에 대한 책임은 집도의와 마취의 중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마취의와 집도의가 서로간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싸우는 동안, 피해자 부모들은 마취의와 집도의 둘다 형사고소 및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부분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경우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이건 피해자는 예외적으로 식물인간이 된지 45일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였던 의료진도 45일만에 의식을 회복하는 경우는 처음 경험하였다. 아마도, 결혼도 하지 않고 식물인간이 된 딸을 위해 밤낮으로 정성스럽게 눈물을 흘리며 간호한 부모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상태는 온전치 못하였다. 말은 어눌하였고, 걷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기억은 오래가지 못하였고, 행동도 느렸다. 말 그대로 불구자가 된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마도 딸을 이렇게 만든 의사들을 볼때마다, 분노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기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집도의와 마취의는 수사기관에서, 민사 법정에서, 계속하여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니탓, 네탓이라고 주장하였다. 신체감정과 진료기록감정이 진행이 되었고, 검찰의 수사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검찰은 집도의와 마취의 전부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기소를 하였다. 형사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부모는 형사법정에 찾아와서 집도의를 향해 엄청난 욕설과 함께 침을 뱉기도 하였다. 재판이 끝남과 동시에 집도의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피해자의 부모가 쫓아오는 것이 무서워 줄행랑을 쳐야 했다.
1심 법원은 집도의와 마취의 전부 유죄를 선고하였다.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고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집도의는 금고 1년, 마취의는 금고 10월에 해당하는 실형을 선고하였다. 과실범이기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하지 않고 금고형을 선고한다. 대부분의 의료사고의 경우 실형을 선고하기 보다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하는데 비하여, 금고의 실형을 선고한 것은 피해회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만 보여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었다. 그러나,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실제 법원은 고위 정치인의 경우 실형 선고를 하면서 법정 구속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의료진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경우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실무관행을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집도의와 마취의 모두 항소를 하였고, 항소심 역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공방만을 하였다. 그 사이 민사판결이 선고되었고, 법적인 손해배상 범위는 2억원이 조금 넘어가는 금액이었다. 형사 항소심 재판부는 집도의에게 무조건 피해자측과 합의를 보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피해자측과 합의는 쉽지 않았다. 피해자 부모들은 지방에서 상당한 경제력을 소유하고 있는데다가, 금전적 배상보다는 의사들로부터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자 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의사들을 구속시켜서 억울함을 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피해자측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상 합의는 물건너 간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형사 항소심 사건에서 집도의와 마취의는 각 1억원씩 공탁을 하였다. 항소심은 공탁을 하였다는 이유로 집도의에게는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1년을, 마취의에게는 벌금 1천만원을 선고하였다. 손해배상 사건에서 피해자측은 억울하다고 항소를 하였고, 항소심에서 1심 판결금 외에 추가로 일부 금액을 더 지급하는 것으로 하여 사건은 전부 종결되었다.
지금도 대한민국 하늘 아래 피해자는 평생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의 부모 역시 그 딸을 보면서, 응어리진 한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장애우가 된 딸을 보면서 먼저 눈을 감
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취과 의사는 이건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을 떠났다. 아마도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마취과 의사로서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집도의는 여전히 동일한 장소에서 성형수술을 잘 하면서 살고 있다.
사고가 발생하였을 당시 처음부터 집도의가 피해자측에게 사과를 하고 피해변제를 약속하였다면, 그래서 마취의와 함께 책임을 공동으로 졌다면 형사 법정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집도의의 입장에서 지방흡입이라는 성형수술로 인해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검사나 판사, 환자들은 성형수술을 집도한 의료인의 책임이 더 커다고 생각한다. 마취의 역시 인수인계를 마치고 현장을 떠났으므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마취문제(각성지연)로 인해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한 것이므로 면책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최초 상담과정에서 집도의와 마취의의 책임비율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어려우므로 50:50으로 책임비율을 정하자고 중재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민, 형사재판을 통해서 50:50이라는 책임이 각 인정되었다. 처음부터 전문가의 조언을 귀담아 들었다면, 오랜 기간 법정에서 수모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돈은 돈대로 나가고, 몸은 몸대로 고생을 한 사건이었다. 의료사고가 발생하여, 집도의와 마취의 간에 책임비율로 다툼이 있을 때 서로간에 싸우는 것보다 집도의가 대외적으로 환자측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부적으로 마취의와 책임비율을 조절하고, 그 책임비율을 정하는 것이 어려울 때 법원에 조정신청을 통해 책임비율을 분담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분쟁해결책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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