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이야기
채혈이란 혈관에서 혈액을 채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혈액은 동맥혈과 정맥혈로 구분되고, 혈관이라는 관속을 흐르고 있다. 혈관은 동맥혈관(심장 정확히는 좌심실에서 온몸으로 나가는 피를 보내는 그릇)과 정맥혈관(말초혈관에서부터 심장 정확히는 우심방으로 들어가는 피를 보내는 그릇)으로 구분되고, 말초혈관, 모세혈관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체의 혈관을 한줄로 연결하면 약 10만 킬로미터가 된다고 하니 지구 세바퀴를 돌수 있는 엄청난 길이가 된다.
동맥혈이든 정맥혈이든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주사바늘(needle)로 혈관을 천자해야 한다. 이 혈관의 구조를 보면, 외막, 중막, 내막으로 세겹으로 쌓여 있는데, 이 세겹을 주사바늘이 뚫고 지나가야 피를 뽑을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혈액채취를 위해 정맥혈관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생후 45일된 갓난 아기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고 경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기는 우유를 잘 먹다가 2011. 7. 4.경 저녁 무렵 열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다음날인 7.5. 동네 소아과 의원에 내원하여 체온을 측정했는데, 38.8도까지 올라갔다. 소아과 의사는 갓난아기이고 고열이 나니 패혈증이 의심된다고 하면서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하면서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주었다. 2011. 7. 5. 11:36경 대학병원에 도착하여 진료를 받았는데, 아기는 체온이 38.2도였고, 다른 특별한 이상 소견은 없이 잘 먹고 잘 놀고 있었다. 아기를 진료한 의사는 일단 패혈증으로 의심하고, 확진을 위해 간호사에게 혈액검사, ESR(적혈구침강속도), CRP(급성염증반응), PCT(혈액응고검사), 혈액배양검사를 지시하였다. 혈액검사상 패혈증을 시사하는 정도의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다.
14:00경 아기는 체온이 37.5도로 조금 내려갔지만, 심장박동수가 148회/분, 호흡수가 46회/분로 체크되었다. 간호사는 15:00경 채혈을 위해 아이의 혈관을 찾기 시작하였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45일된 아기의 혈관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른팔 등부터 혈관확보를 시작했지만, 실패하였고, 왼쪽 팔등으로 옮겨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하였다, 오른발 등으로 옮겨 시도했지만 실패하였고, 왼쪽 발등으로 옮겨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하였다. 15:18경 아기는 계속 울고 있는 상태에서 왼쪽 팔등부위에서 다시 채혈을 시도하여 혈액을 일부 채취하였고, 다시 오른쪽 팔등에서 정맥주입경로를 확보하던 중 아이의 얼굴에서 청색증이 나타났다. 간호사는 경력이 많은 베테랑이었지만, 정작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옆에서 지겨 보다가 혈액샘플을 받은 간호사는 놀라서 의사를 부르기 위해 채혈실을 나가다가 정맥라인을 발로 건드리는 바람에 도리어 채혈실은 여러 군데 피가 튀어 수술장을 방불케 하였다. 응급 심폐소생술 팀이 도착하여 산소를 공급하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기관삽관을 시행하였고, 중환자실로 이송되었으며, 기관내삽관 길이를 12cm에서 11cm로 조정하였다. 산소포화도는 17:30경까지 측정되지 아니하였고, 이후부터 꾸준히 상승하여 2011. 7. 5. 24:00경이 되어서야 95%가 되었다. 이후 계속되는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결국 2011. 7. 6. 09:47경 사망을 하고 말았다. 사망진단서상 사인은 신생아 패혈증, 호흡정지, 대사성 산증이었다.
국과수 부검의는 부검소견서에서 사망원인이 불명이나 병원에 내원하기 전날 고열이 있었던 점과 조직학적으로 허파에서 급성화농성폐렴의 해소가 의심되는 소견을 보이는 점을 기초로 패혈증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아이의 사망 이후 장례를 치른 다음 유족들이 병원을 찾아가서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병원측은 신생아 패혈증으로 사망하였을뿐 의료진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고 변명하면서 위로금으로 1500만원 정도를 제시하였다. 아이의 엄마와 함께 채혈 현장을 지켜보았던 아이의 할머니는 너무나 분하고 병원측 태도가 괘씸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였다. 아무리 대학병원이지만 너무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소송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주변 이웃부터 친지들이 전부 말렸다. 어차피 대학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해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서 이길수 없으니 소소을 포기하라고 하여, 처음부터 패배감만 주어졌고 사기가 저하되었다. 그리하여 서울로 올라가서 상담을 했는데 생각보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마침 친척중에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서 형사고소라도 해 보려고 하자, 의료전문변호사를 찾아서 상담을 받으라고 했다.
문제는 간호기록지의 기록내용이었다. 아이의 할머니가 말하는 채혈과정은 전부 생략되었고, 간호기록지는 15:00경 정맥주입로 확보 시작(실패), 15:18경 청색증 발생, 산소 공급 분당 10리터, 15:23경 기관삽관(12cm)만 기록되어 있었다.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임상경과에 대한 사실관계를 잘 입증해야 하는데,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처음부터 상당한 난관에 처해 있었다.
소송을 제기하고 간호기록지에 기록된대로 질문을 하였다. 진료기록감정회신결과는 예상대로 채혈행위로 인한 쇼크가 아니라, 패혈증으로 인하여 쇼크가 올때가 되어서 온 것이고, 원인은 패혈증보다는 아이의 오빠가 걸린 수족구 바이러스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정말 황당하였다. 아무리 그래도 채혈행위를 하기 전에는 열도 높지 않았고, 우유도 잘 먹었으며 잘 놀았기 때문에,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는 도무지 승복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간호기록지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관계 부분에 대하여 할머니의 진술서를 기초로 6번의 채혈준비행위, 2번의 채혈행위로 인한 문제점에 대하여 다시 사실조회를 하였다. 핵심은 정맥주입로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 쉬어가면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 후에 다시 채혈을 시도하거나 경정맥 등을 이용하여 정맥주입로를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였다.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최초 재판부는 진료기록감정회신문 내용만 보고서는 상당한 예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조회 신청 이후 재판부가 변경되었고, 새로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병원측에게 아이가 사망한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입증을 하라고 하였다. 즉, 채혈행위를 하기 전에는 패혈증 쇼크에 이를 만한 임상 증상이 없었고, 채혈한 혈액을 통한 검사에도 패혈증 쇼크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수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왜 쇼크가 왔는지 그 원인을 밝히라고 하였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의뢰인들(아이의 아버지, 엄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머니)은 전부 눈문을 흘렸다. 판사님의 그 말 한마디, 병원측에서 아이가 사망한 원인이 무엇인지 자세히 밝히라는 그 말에 의뢰인들은 그동안 쌓였던 불신과 원망이 봄비에 눈 녹듯이 사그라졌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할머니와 병원의 간호사를 각 증인으로 채택하여 신문을 한 다음 변론을 종결하였다. 솔직히 병원측 책임이 30% 정도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재판부는 무려 70%를 인정하였다. 예상외의 선전이었다. 다만, 간호사가의 채혈행위에 대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주장을 하였지만, 재판부는 정맥주입로 확보를 통한 채혈행위에 대하여 간호사가 의사의 위임을 받아서 할 수 있는 행위라고 판단하였다. 기존의 형사 판례에 비추어 보면, 근육주사(IM) 정도는 임상 관행이라 간호사가 할 수 있지만, 정맥주사(IV)는 의료행위이므로 간호사가 이를 시행하다가 사고가 나는 경우 무면허 의료행위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이번 판결을 통해 간호사가 채혈행위를 하는 것에 대하여 판례법을 통해 허용이 된 것이다. 병원측은 즉각 항소를 했다. 항소심에서도 동일한 주장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환자측에게 채혈행위로 인하여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학적 근거 자료를 제시하라고 하였다. 환자측이 PAIN SHOCK 또는 NEEDLE SHOCK에 대한 주장을 하면서, 45일된 갓난아기의 경우 주사바늘 자극에 의해서도 쇼크가 얼마든지 올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관련 소아과 교과서와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러자, 병원측은 책임제한사유를 언급하면서 관련 유사사건에서 주사나 채혈과정에서 쇼크가 발생한 사건의 판례는 전부 병원측 책임을 20-30% 정도밖에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책임범위가 대폭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항소심 재판부의 입장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측에게 30% 정도로 조정을 하지 않으면, 책임이 전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압박을 하였다. 재판부는 원고측이 선뜻에 조정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양 당사자를 분리하여 조정절차를 진행하려고 하였지만, 사건을 담당하던 대리인은 참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면서, 분리해서 이야기할 필요 없으니, 그냥 병원측 관계자들 있는데서 이야기하겠다고 하였다.
“지금 아이가 채혈과정에서 사망을 하였는데, 돈 몇푼 갖고 장난 하는 것이냐, 당신 자식이 이렇게 피어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죽어 갔다면, 책임범위를 30%로 할 것이냐 50%로 할 것이냐 이런 것으로 논쟁을 하겠느냐, 환자측은 돈도 필요 없으니, 아이 살려내라, 그리고 아이에게는 위자료를 더 주어야 한다는 판례도 있지 않느냐, 30%나 50%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 더 이상 원고측에게 인내심을 요구하지 말아라”라고 격하게 주장을 하고, 조정실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윽고 피고측과 대화를 마친 다음 재판부는 50%로 책임범위를 정하여 조정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임의 조정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대학병원 병동에서 근무하는 임상 간호사의 업무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근육주사, 피내주사, 피하주사, 정맥주사, 마취주사, 채혈행위 등 전부 허용되는 것일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대학병원에 따라 간호사가 채혈행위를 하는 곳도 있고, 의사 정확히는 인턴이 채혈행위를 하는 곳도 있다. 병원측 관계자들의 말
에 의하면, 보건의료노조가 강한 곳은 의사가 채혈행위를 하고, 노조가 힘이 약한 곳은 간호사가 채혈행위를 한다고 한다. 물론 우스개 소리지만 상당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45일된 아기는 이땅에서 그 생명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채혈을 받다가 사망을 하고 말았다. 엄마의 입장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수 없다. 아기를 가지기도 힘들고, 10개월간 뱃속에서 유지하기도 힘들며, 또 낫기는 얼마나 힘든일인가. 그런데 잘 낳아서 45일만에 떠나 보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은 오죽하였을까. 잘잘못을 떠나서 피어보지도 못한 한 생명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병원측 논리대로,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가 왔다고 가정하더라도, 아기의 엄마와 할머니가 보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차라리 당시 대학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가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저 하늘나라에 가서 작은 별이 되어 늘 지켜보기 바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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