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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문변호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피디수첩에서 전자 의무기록의 추가기재, 삭제 등 임의 정정이나 변작에 대한 폐해를 지적한 방송을 본적이 있다. 과거 수기로 작성하던 때와 달리 컴퓨터 전자의무기록상에서 임의로 정정하거나 추가기재를 하더라도 환자가 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문제점이었다.

 

얼마전 아버지가 기침 때문에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검사실에서 리도카인 마취를 위해 스프레이로 구강에 뿌리고 나서 쇼크가 발생했는데, 응급처치가 소홀하여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하여 현재 식물인간 상태가 된 사건을 상담하였다.

 

의뢰인이 복사해 온 진료기록(간호기록지, 심폐소생술 기록지 등)을 토대로 사건 분석을 해 보았다. 리도카인 5%와 자일로 케인 2% 구강내 스프레이 마취후 5분 정도 지나서 환자 상태가 나빠졌고, 당시 주치의는 환자의 신경학적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신경과 의사를 호출하고, 검사실 밖에 있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후 완전 의식저하가 발생하여 기관삽관 및 에피네프린 등 약물을 투여했다고 기록이 되어 있었다.

 

병원 입장은 리도카인 쇽(shock)은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이고, 쇼크 발생시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응급처치를 하였기 때문에 임상의학 기준으로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오호통재라. 과연 환자는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말이 없고, 결혼을 한달 앞둔 딸과 막내딸, 아내가 과연 병원측의 이러한 설명을 듣고 수용하고 납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도 기록된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던가.

 

간호기록과 심폐소생술 기록지에 기록된 임상 사실관계만 놓고 보면, 병원측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큰 딸이 갑자기 진료기록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였다. 분명히 내시경 검사실로 가기 전에 병실에서 네블라이저로 호흡보조를 하면서 리도카인 마취가 동시에 10분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아무런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침 환자의 처남이 도청에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상담 요청을 해 왔다. 병원에 병원장과 미팅을 주선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단 병원측에 병원장 상담 요청을 했지만, 성립되지 않았고, 법무실 과장과 팀장을 만났다. 그리고,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우자를 직접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났다.

 

병원측이 15층 회의실을 준비해 주어, 법무팀장, 법무과장, 환자 배우자, 환자 처남, 대리인 이렇게 5명이 오전 10시경부터 면담에 들어갔다. 그 자리에서 환자 배우자는 진료기록부에 기재되지 않은 두가지 문제제기를 했다.

 

하나는 검사실에 가기 전에 병실에서 10분간 마취약제가 투여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사실에서 주치의가 다른 내시경 검사실에 갔다가 환자에게 마취약제로 인한 쇼크가 발생하였을 당시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다.

 

대리인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건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찔러 주는 문제제기였다. 의료사고를 상담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진료기록을 열람복사하고, 의료전문변호사를 찾아온다. 문제는 사건의 실체를 가장 잘 아는 배우자는 환자에 대한 간병문제 때문에 서초동 법률사무실까지 올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내용을 전해 들은 다른 가족이 상담을 오기 때문에 실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정확히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날 병원 중환자실을 방문하고, 회의실에서 미팅을 하면서 느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진료기록에 기재된 것이 실제적 진실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왜 리도카인 적정 용량을 사용했는데, 쇼크가 왔을까. 의사는 왜 처음부터 마취약제로 인한 쇼크를 예상하지 못하고 즉시 응급약물 투여를 하지 못했을까.

 

답은 현장에 있었다. 이미 마취 약제를 10분간 투입한 상태에서 다시 내시경실에서 동일한 약의 마취약이 들어갔기 때문에 마취용량의 초과로 인한 쇼크 발생이 얼마든지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치의가 마취를 하고 나서 마취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내시경실에 가 있으면서 환자를 직접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쇼크가 발생하였을 당시 즉각적인 처치를 할 수가 없었고, 도리어 환자의 신경학적 이상증상에 대하여 신경과 의사를 호출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명심해야 할 교훈은 기록된 것이 임상 경과에 관한 사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환자에게 중한 악결과가 발생한 경우 사고를 낸 의료진(의사나 간호사)이 작성한 진료기록에 대해서는 그 신빙성에 충분히 의문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말한 것과 같이 의심할수 있는 모든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환자나 보호자의 진술이 더 구체적이고, 사고 상황에서 신빙성이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전문가인 의료진이 작성한 기록이라도 하더라도, 의료사고가 난 현장에서 작성한 진료기록의 기재내용은 진술서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가 중할수록, 그리하여 손해배상 책임이 높거나 형사책임 소재가 문제될 때 의료진은 더더욱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하여 진료기록에 기재를 하면서, 실체적 진실에 약간 벗어나게 기록을 할 수 있다는 사정을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한다. 임상 현실에서 몇분, 몇초의 기록을 사실과 다르게 하는 경우 책임을 질수도 있고, 면책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의무기록은 최초 수기로 진료기록을 작성했다가 나중에 옮겨 적을수도 있고,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 정리를 하여 기록을 하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의료행위 예를 들면, 응급상황에서 앰부배깅으로 산소를 공급했다는 내용 등은 사후에 진료기록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추가로 내용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환자는 제때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기관삽관이 지연되었거나, 전원이나 이송과정에서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저산소성 뇌손상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진료기록에 산소를 공급했다고 기록하는 순간, 실체적 진실은 영원히 묻히게 되고,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는 환자의 체질적인 소인 탓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심리하는 지위에 있는 검사나 판사의 경우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환자에게 발생한 악결과를 기초로, 그 중간단계에 행해진 의료행위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진료행위 시간대와 진료행위 중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의료진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의료행위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 신빙성을 의심하고 철저히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소송이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에 마취과 전공의 1년차가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판결문을 구해 보니, 다리 골절 수술을 위해 척추마취를 했는데, 수술도중 환자의 혈압이 불안하여 전신마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된 사건이었다.

 

핵심은 전신마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호흡근을 마비시키는 석시니콜린을 투여하고 기관삽관을 하기 전에 손으로 산소를 공급했다는 부분이 있었다. 과연 그랬을까. 레지던트 1년차면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소마취후 전신마취로 전환해야 하는 과정에서 근이완제를 투여하고 나서 바로 산소공급이 가능했을까. 또한 손으로 산소공급을 했다고 해서 호흡근이 마비되었는데 제대로 산소공급이 되었을까. 즉시 기관삽관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반대로 산소공급과 기관삽관이 되었다면, 환자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라는 악결과가 발생했을까. 물론, 형사재판이기 때문에 피고인이 된 의사로서는 자신도 억울하다는 취지로 모든 항변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가 된다. 피고인은 과실 혐의를 부인해야 하고, 법정에서 또 그렇게 진술하고 주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근이완제를 투여하고 나서 기관삽관을 하기 전까지 손으로 산소를 공급했다는 부분은 피고인의 진술 외에는 달리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경험칙상 의사로서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재판부의 심증형성이 무죄를 선고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임상현장에서 위급한 상황이 발생되었을 때 침착하게 대처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수가 있다. 그러나, 증거에 따라 판단을 해야 하는 재판부 입장에서 피고인의 진술을 반박할수 있는 검찰측 증거가 없는 이상 피고인의 진술이 팩트가 되는 것이다. 피고인의 진술이 팩트가 된 이상 과실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이유가 의료사고의 경우 형사고소를 쉽게 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리어 민사소송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잘못된 사실관계를 특정하여 결과를 엉뚱하게 만들어 낼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수술방이나 중환자실, 내시경실 등 씨씨티비가 없는 한, 진료기록 기재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