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의 의료사고 이야기
“제발 한번만이라도 인간적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겠다. 장례식장을 방문해서 유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 소송이건 형사고소건 전부 포기하겠다.” 이는 의료사고로 아내를 떠나 보낸 남편이 필자에게 호소한 절규의 소리였다.
의사라고 의료사고를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79세의 여의사(가정의학전문의)가 의료사고로 사망을 하였다. 여의사는 평소 좌측 엉덩이 통증이 계속되어 검사를 받았는데, 고관절치환술이 필요하다는 검사결과가 있었다. 여의사는 자신의 아들(진단방사선과 전문의)과 대학동기동창이 정형외과 전문의(고관절 전문, 젊은 날에 강남 에 위치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로 임용됨)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들의 소개로 아들 친구 L모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서 VIP대우를 받으면서 아들 친구 L모로부터 고관절치환술을 받았다.
문제는 수술 다음날부터 환자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수술 후 3일째 환자는 수술부위보다 배(정확히는 상복부)가 더 아프다고 했다. 심지어 속이 메스껍고 구토가 나올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배가 왜 아픈지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부 엑스레이 촬영을 했지만, 단지 배에 변이 차서 그럴 것이라고 하면서 관장을 2회하고 좌약을 2회 투여하였다. 더 이상 변이 나오지 않음에도 계속 복부통증을 호소하자, 이번에는 진통제만 투여하였다.
급기야 수술후 4일째 환자는 휠체어를 타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숨이 답답하고 가래가 차는 것 같다고 하다가 얼굴이 창백해지고 축 늘어지면서 청색증을 보였다. 환자는 곧 의식을 잃었고, 흔들어도 반응이 없게 되었다. 그제서야 병원은 코드블루 상태에서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환자는 산소포화도가 50% 이하로 떨어졌다. 응급조치팀이 도착하여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환자는 끝내 그 자리에서 사망을 하고 말았다.
왜 고관절 수술을 받은 할머니 의사는 수술뒤 배가 아프다고 하다가아무런 검사나 조치도 없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가게 되었던 것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인적, 물적 시설을 자랑하는 강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잘 한 것은 분명할까.
이 정도쯤에서 몇 년전 세브란스병원에서 우측 신장암 수술을 받고나서 복부통증을 호소하다가 십이지장이 천공되어 복막염, 패혈증 등으로 사망한 고 박주아의 의료사고가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얼마전에 의료사고로 사망한 신해철 역시 위밴드 수술 후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는데 적절한 검사나 치료가 없어서 사망을 하지 않았던가.
수술은 고관절(엉덩이부분) 부위를 했는데, 왜 통증은 상복부(엉치)에 발생하는 것일까. 이러한 경우 환자나 보호자, 의료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과연 정형외과 전문의는 수술만 잘하면 전부인가. 수술이후 배(특히 상복부)가 아프다고 하면 전적으로 환자나 보호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가. 여기에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의학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폐색전증과 심부정맥혈전증이다.
폐색전증은 정맥 특히 심부정맥(deep vein)에 생긴 혈전(thrombosis)이 폐의 혈관으로 이동하여 폐의 혈관을 막은 상태를 말한다. 심부정맥 혈전증은 체내의 심부정맥에 응고된 혈액덩어리가 생기는 것이다. 심부정맥혈전증은 폐색전증의 선행질환인 경우가 많은데, 심부정맥혈전증이 발생한 경우 폐색전증이 발생하는 비율은 30%나 된다.
심부정맥혈전증은 고령, 뇌경색, 정맥수술이나 정맥류, 정형외과적 수술을 한 경우, 척수손상, 골절(골반, 고관절, 대퇴골등), 만성하지부종,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거나 비만, 하지정맥류, 임신, 경구 피임제나 호르몬 제제를 복용한 경우, 출혈과 수혈이 많은 경우 그 발생 위험성이 높아진다.
환자에게 갑작스런 호흡곤란 및 빠른 호흡이 발생하거나, 흉통, 기침, 청색증, 객혈, 빈맥 등이 발생하면 폐색전증을 의심해 볼수 있으나, 증상이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많이 있다. 폐색전증이 대량으로 발생하는 경우 원인을 알수 없는 불안감이 생기고, 활력징후 중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높아지며 호흡수는 증가하고 산소포화도는 감소한다.
이러한 폐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행 및 운동, 압박스타킹의 사용, 헤파린, 와파린 등 항응고제 투여를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이러한 치료를 통해 심부정맥혈전을 예방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따라서 모든 수술 환자와 고위험군 환자에게서 심부정맥혈전의 예방이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심부정맥혈전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혈관초음파, CT, 정맥조영술 등 영상검사를 통해 정맥내 혈전의 존재를 확진할수 있다.
이건에서 여의사는 수술당시 79세의 고령상태에서 고관절 수술을 받았으므로, 고령과 수술 그 자체로 심부정맥혈전증의 발생 위험성이 높은 환자였다. 게다가 고관절 수술 직후부터 반복적인 오심, 구토, 상복부 복통을 호소했다. 그럼에도 의료진들은 그 원인을 감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했다. 심지어 혈액검사, 심초음파검사, CT혈관조영술, 폐환기스캔등 심부정맥혈전증을 진단할수 있는 검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심부정맥혈전증 발생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환자임에도 약물요법을 병행하지 않았고, 아스피린 100mg을 1회 투여한 것이 전부였다. 아스피린의 경우 혈소판이 주성분인 동맥혈전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적이나, 섬유소가 주성분이 정맥혈전의 예방과 치료에는 그 단독사용의 효과가 명확히 검증된바가 없다. 따라서 아스피린 투약만으로 심부정맥혈전증 예방을 위한 충분한 약물치료로 보기 어렵다. 결국 의료진은 여의사 환자에 대한 폐동맥색전증을 예방, 진단, 치료하기 위한 적절한 의학적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였다.
병원측은 환자의 사망원인은 기도폐색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 및 그로 인한 심정지이지, 폐동맥색전으로 인하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설령 폐동맥색전으로 사망을 했다고 하더라도, 의료진은 탄력스타킹 착용, 공기압박펌프 사용, 아스피린 투여 등 혈전 생성을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다. 아울러 폐동맥색전을 진단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지 않고, 혈전용해제 등을 투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폐동맥색전증의 임상증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폐동맥색전증을 진단, 치료하지 못한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환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하기 전에 시행한 심전도 검사에서 우각차단소견(Right Bundle Branch Block, RBBB)이 확인되었고, 이는 폐동맥색전증을 의심할수 있는 임상증상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또한 폐동맥색전증 환자에게는 우각차단과 함께 우축편위(Right Axis Deviation, RAD)소견이 관찰되는 것이 보통이나, 환자와 같이 좌심실 비후(Left Ventrcular Hypertrophy, LVH)의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우각차단과 함께 좌축편위(Left Axis Deviation, LAD)소견이 관찰될수 있으므로 폐동맥색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환자에게 나타난 갑작스런 혈압저하 소견은 폐동맥색전으로 인한 순환장애가 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병원측 주장을 배척하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판부는 병원측 주장보다 환자측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적인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알비비비(RBBB)’라고 하면서 폐동맥색전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이 말을 듣는 의사들은 아마도 깜짝 놀랄 것이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환자가 부검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병원측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면서, 심부정맥혈전이나 폐동맥색전증은 처음부터 선행사인이나 중간선행사인에서 배제하였고, 오로지 기도폐색에 의한 호흡정지, 흡인성 폐렴으로만 사망원인을 추정하였다. 또한 유족들에게 설명하기는 사망원인은 부검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변명하였다. 법정에서 변론을 할때도 마찬가지였다. 환자는 죽고 말이 없는데, 사망원인은 부검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태도였다. 결국 그것은 유족들이 사망원인과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려면 입증해봐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는 대한고관절학회에 사실조회를 신청하여, 아주 친절하게 수술도 잘되었고, 수술 이후 혈전예방조치도 잘 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돈이 아니었다. 그래서, 최초 상담과정에서 소송보다는 조정신청을 해 보자는 권유에 따라 소장 접수를 하기 전에 먼저 조정신청을 하였다. 유족들은 조정과정에서 집도의가 ‘미안하게 되었다’는 한마디만 했다면, 조정을 취하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조정신청취지 1항에는 “집도의는 유족들에게 망인의 사망원인에 관한 해명의무를 이행하라”는 조항을 넣었다. 유족들의 조정신청에 대한 병원측의 답변은 ‘미안하다’가 아니라,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었다.
망인의 남편은 대리인에게 ‘나도 살만큼 살았고,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의사를 찾아가서 칼로 찔러 죽이고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센터에서 첫 조정기일이 진행되었다. 너무나 입장차이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조정기일을 지정하고, 그때는 병원측에게 의사가 직접 출석해 주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2차 조정기일이 열렸다. 그러나, 조정기일에 환자의 남편과 의사 아들은 출석을 했지만, 병원측 집도의는 출석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조정신청을 했지만, 결국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조정은 불성립되었고, 조정센터에서는 병원측이 환자측에게 위자료 4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강제조정을 했다. 그러나, 병원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재판에 회부되었고, 재판부는 변론을 종결하기에 앞서 원고측 대리인에게 ‘해명의무를 이행하라’는 부분에 대하여 취하를 권유하였다. 그러나, 대리인으로서 각하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의뢰인의 입장에서 ‘해명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에 취하를 할수 없다고 간곡히 설명하였다. 그래서, 판결문 주문에는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소 중 망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해명의무 이행청구부분을 각하한다.’고 설시되어 있다.
이로써 의료소송 최초로 금전배상청구가 아닌 ‘해명의무를 이행하라’는 이행의 소 청구는 보기 좋게 각하가 되었다. 재판부는 ‘의사를 상대로 환자의 사망원인에 관한 해명을 구하는 것은 재산상 또는 신분상의 구체적인 권리관계에 관한 쟁송이라고 할 수 없어 이를 소로서 구할 법률상 권리보호 이익이 없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해명의무의 의미와 구체적인 내용, 법률상 근거 및 의무이행의 방법 등도 불분명하므로 이 부분 소는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숙제가 생긴 것이다. 보건의료기본법 제5조 제1항에는 ‘보건의료인은 자신의 학식과 경험, 양심에 따라 환자에게 양질의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들이 환자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의료인으로부터 해명을 들을 권리는 이러한 보건의료인이 양질의 적정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앞으로도 환자가 사망한 의료소송 청구사건에서 청구취지 1항에는 해명의무를 이행하라는 조항을 넣어야겠다. 그래서 해명의무의 의미와 구체적인 내용, 법률상 근거, 의무이행의 방법 등에 대하여 구체화해야겠다. 그래야, 의료사고가 발생한 현장에서 진심으로 환자나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의료인이 많아질 것이라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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